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문단 편집) == 부정적인 영향 == 마르크스의 학문적 업적과 별개로, 마르크스의 종교에 대한 관점은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종교인들이 희생된 원인을 제공하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과 종파들을 고려하지 않고 싹다 싸잡아서 인민들을 현혹시킨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평범한 종교인이나 인민들마저 학살한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의 추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각에서는 종교계가 근본적으로 반공주의자가 될수 밖에 없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져서 계급 투쟁의 일환으로 탄압당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물론 자발적으로 독재 정권이나 기득권층과 협력한 종교인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공산주의]]측의 학살로 인해 불가피하게 돌아선 경우도 많았다. 단적인 예로 [[스페인 내전]] 당시의 카톨릭 교회를 들수 있다. 당시 카톨릭 교회의 반동적인 모습이나 부패상은 교회의 고위층에 한정 되었을 뿐,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같이 착취 당하고 고생하는 피지배계층에 가까웠다. 낭설과는 달리 교회가 소유한 땅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마르크스나 [[공산주의]]들의 선동과 반대로 대다수의 일반 사제들은 민중들을 착취하거나 현혹하기는 커녕 그들과 동거동락 하면서 이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호소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조차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측의 맹목적인 혐오와 학살의 칼날을 피할수 없었다. 공화파측의 [[적색테러]]로 인해 수많은 교회들이 파괴되고 사제와 수녀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학살 당했다. 내전 전 3만명이었던 사제들 중 6800여명이 적색 테러로 인해 학살당했고 공화파가 전쟁 후반까지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말라가]]나 [[발렌시아]] 같은 지역에서는 50%에 달하는 사제들이 학살 당했다.[* Cueva, Julio de la. “Religious Persecution, Anticlerical Tradition and Revolution: On Atrocities against the Clergy during the Spanish Civil War.”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33, no. 3 (1998)] 역시 기득권층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차별받었던 스페인의 [[개신교]] 교회들마저 공화파측의 광신적인 종교 혐오로 인해 수없이 파괴되었다. [[소련]] 역시 매우 악랄한 탄압과 학살을 일삼았는데, 혁명이 갓 일어난 [[1918년]]에만 1만 2천여명에 달하는 사제들이 공산 정권에 의해 학살 당했으며 전쟁 전 5만 5천여개에 달하던 교회들은 지속적으로 파괴되거나 탄압 당한 끝에 문을 닫아 [[1927년]]에는 2만 9천여개로 줄어들었고, 1939년에는 겨우 200-300여개의 교회만이 살아남았다.[* Davis, Nathaniel. “The Russian Orthodox Church: Opportunity and Trouble.” Communist and Post-Communist Studies 29, no. 3 (1996)] 물론 제정 시절에 인민들을 착취하는 사제들도 존재했고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 편을 든 사제들이 많았던건 사실이다.[* 사실 이것도 [[스페인 내전]] 때처럼 [[볼셰비키]]들이 공개적으로 교회를 비난하고 탄압해대니 자업자득이었다. 사제들도 전부 반동 귀족들 편만 든게 아니라서 [[케렌스키]] 같은 [[자유주의]] 세력과 협력한 사제들도 있았다.] 허나 교회 차원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일은 없었다. 당시 총대주교였던 티혼은 백군 측을 축복하기를 거부했을뿐 아니라 교회 조직의 정치적인 중립을 지킬것을 명령했다. 게다가 내전 당시 [[볼셰비키]]의 종교인 학살 절대 다수는 적군측을 상대로 싸우기는 커녕 아무런 편도 안들거나 단순히 백군측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사제, 그리고 그들의 무고한 가족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Dimitry V. Pospielovsky. A History of Soviet Atheism in Theory, and Practice, and the Believer, vol 1: A History of Marxist-Leninist Atheism and Soviet Anti-Religious Policies, St Martin's Press, New York (1987)] 아무리 험난한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의견 표명을 한 사제들이나 그들의 무고한 가족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만행을 절대 계급투쟁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 할수 없다. 소련 정부의 종교계 탄압은 내전 이후에도 꾸준하게 유지되었는데 이때쯤이면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제국|제정]] 시절에 누렸던 모든 특권과 재산을 상실한 상태였는데다가 살아남기 위해 공산 정부에 어느정도 협력까지 하며 싹싹 빌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1917년과 1935년 사이의 기간 동안 9만 5천여명에 달하는 사제들과 수녀들이 학살당했고, 탄압이 절정에 달했던 1937년-1941년 기간에는 무려 10만여명이 총살되었다. 마르크스의 발언을 자기식으로 해석한 [[레닌]]과 그의 후계자들은 단순히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종교인을 탄압하는 것을 넘어 '''종교 자체를 절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John Anderson, Religion, State and Politics in the Soviet Union and Successor Stat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이를 일방적인 학살이나 제노사이드가 아닌 단순한 계급투쟁의 결과로 보는 것은 악의적인 왜곡에 불과하다. 독소전쟁 이후 스탈린이 종교 탄압을 크게 완화 시킨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탄압은 미약하게나마 존재했다. 허나 흐루쇼프 시기에 정교회를 상대로 한 탄압이 다시 증가해서 2만 2천여개로 늘어났던 교회들의 숫자는 다시 7000여개로 줄어들었다. 사제들은 다시 수용소에 갇히거나 정신병자로 몰려 수감되었으며 정교회 신자들은 진급과 봉급 등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다. 동독,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에서는 표면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허나 적어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막으려고 했던 성차별, 인종차별, 민족차별과는 다르게 종교인들은 조직적인 차별을 받았고 정부가 직접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을 주도했다. 급진적인 무신론, 반종교 이념은 비단 현실사회주의권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 세력도 역사적으로 공유해왔다.[* 다만 아나키즘의 역사에서 톨스토이, 엘륄 등의 기독교 아나키즘 역시 중요한 조류이기 때문에, 아나키즘이 반드시 무신론, 반종교, 혹은 반신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제2공화국]]의 경우 오히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아나키스트 민병대들이 카톨릭 교회 방화, 성직자 학살에 열을 올리는 반면 대외적인 이미지도 신경써야 되는 집권 여당인 사회노동당 정부이 오히려 자제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현실 공산권은 기본적으로 종교 탄압 정책을 일반적으로 밀었지만 정치적 필요나 여건에 따라 오히려 완급 조절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소련마저도 러시아 내 2차대전 같은 격동기를 거치면서 정교회에 대한 박해를 완화할 수 밖에 없었고, 독소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제3세계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와중에는 이슬람 박해를 완화할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의 [[월맹]]정권은 [[베트콩]] 시절부터 남베트남 내 반체제 운동에 불교계의 참여가 상당히 크고, 남베트남 [[응오딘디엠]] 대통령 가문과 측근들의 카톨릭이란 공공의 적이 있어 대충 직접적인 체제 비판은 하지 않는 선에서 불교계와 적당히 타협을 봤고, [[라오스]]의 경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프랑스 식민시절부터]] 그나마 이웃 베트남과 비교해도 기본적인 식민지적 개발 자체도 너무 안되 공산주의고 나발이고 누가 정권을 잡던 간에 기본적으로 실무 관료를 할수 있는 식자층 자체가 여전히 [[상좌부 불교]] 승려들 뿐인지라 되려 공산정권이 불교계를 적극 포섭한 사례도 있다. 중남미 경우도 20세기 초중반에는 [[멕시코 혁명]] 이후 혁명 정부가 반동적인 카톨릭계 상대로 [[크리스테로 전쟁]]이란 거대한 무장 반란까지 겪으면서 반종교 기조를 유지했지만, 특히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종교계와 가까워지는 성향을 보인다. 중남미는 원래 식민지 시절부터 식민당국, 유럽계 백인 정착자들 상대로 원주민이나 탈주노예들의 권익을 옹호하던 반체제 사제 집단의 전통도 강한지라 성직자들 본인들이 오히려 급진 좌익 혁명운동에 투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20세기 후반엔 [[해방신학]]이란 조류도 생기면서 연대의 여지도 더 커졌다.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만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정치적 도전만 없으면 카톨릭계와 딱히 대립각을 새우지 않았으며 특히 카스트로 말년 혁신적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적극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였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이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도 해방신학계 쪽으로 카톨릭계를 포섭하려는 태도가 일반적이다. 특히 21세기 들어와선 중남미 현지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주로 친미 우파 성향 복음주의 개신교란 공적을 상대로 점점 더 중남미 좌파와 카톨릭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듯한 모양새이다. 하여튼 이러한 국가 무신론의 종교 박해 정책에 대해서 세속주의-좌파 진영 입장에서는 [[1차세계대전]] [[참호전]]이 터지는 와중에 하느님의 복음으로 전쟁 이겨야 한다고 수입산 고급 촛대를 찾던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을 비교하며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눈이 찢어진 아시아인들이라 멸시당하던 러시아를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전세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피식민지 지식인들이 유학오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지적했듯이 소련의 검열은 정교회 근본주의 나라였던 러시아 제국 시절보다 훨씬 더 빡빡했다는 반론도 있다. 사실 21세기 시점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 [[우파]], [[반신론]]자, [[과학만능주의]]자들이 더 종교에 적대적인 경우가 흔하다. 오히려 좌파들은[* 사실 실제 활동의 차원에서는 종교적 성향의 좌파가 적지 않다. 한국의 1970년대 노동운동도 거의 개신교에 기반한 것이다.] 저러한 조류에 대해 경계를 표하면서 종교에 대해 우호적인 저술을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미국의 진보적 언론인인 크리스 헤지가 쓴 "나는 무신론자를 믿지 않는다(I Don't Believe in Atheists)"는 책의 제목만 봐도 직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서구의 대안 우파들은 기독교 전통에 우호적인 경우가 많지만, 일베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은 대안 우파나 넷우익들이 더 극단적인 반기독교인 경우가 많다.[* 샘물교회 납치 사건 때도 일단은 생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한 것은 개신교계를 제외하면 좌파 세력이 대부분이었다.] 구공산권이 거의 다 무너진 상황에서 특이한 경우라면 중국이다. 중국은 여전히 종교를 강렬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무신론]]이라는 이념적 이유와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혼재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유구한 전통인 민간 종교 조직이 반란군화되는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허나 중국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종교 조직들이 대부분 사이비에 가깝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현재 중국에서 통제받고 탄압받고 있는 메이저 종교 조직들은 이슬람과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계열과 티베트 등지에서 믿는 불교 계열인데, 이들은 딱히 중국 정부에 반기를 든 적도 없고 사건사고를 일으킨 적도 드물다. 특히 중국의 이슬람 탄압은 악랄하기로 유명한데 이슬람 학자들을 대대적으로 감금하거나 살해하는 것은 물론 신장 재교육 캠프라는 강제 수용소까지 만들어서 신장 지역의 이슬람 교세를 현재진행형으로 말살하려고 들고 있다.[* 상술했듯이 이는 종교적인 이유보다 민족 말살이라는 목적이 더 크지만 위구르족의 민족성에서 유독 이슬람교를 집중적으로 탄압하기 때문에 종교 탄압이 아니라고 볼 이유 또한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딱히 테러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대부분 차별만을 반대하고 중국에 충성하는 시민들인데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수감하고 탄압하는 중이다. 극소수의 극단주의 일파가 테러 사건을 일으키고 이것을 명목으로 중국 정부의 이슬람 말살 정책을 정당화 하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기는 하나 전형적인 연좌제 옹호 궤변라고 보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